지방의 한 도시.
비가 오는 낯선 곳에서 택시를 탔다.
습기 머금고 달려가는 장거리 택시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낯설기만 한데,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돌아오는 운전 기사 아저씨의 인삿말이 친근하다.
네박자 정겨운 트로트 리듬이 울려 퍼지던 택시안.
점잖은척 앉아 있는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라디오 채널을 딴 곳으로 돌린다.가끔 장거리 택시를 타면 무료함을 달래려고 기사 아저씨에게 똑같은 레퍼토리로 말을 건다.

" 요즘 경기 안좋아서 힘드시죠? "

인상좋은 아저씨의 입에서는 전문가 못지 않은 비판과 불만이 터져 나온다. 세상 살기 좋아졌다는 말은 갈수록 듣기 힘들다. 차림새가 좀 수상했던지 무슨일을 하냐고 나한테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십여분이 흘러가니 어느새 가까운 이웃처럼 주고 받는 대화가 따뜻해 진다.

어느새 정치비평을 지나서,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 내는 아저씨.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직업인 만큼 아는것도 참 많다. 비가 와서 그런지 가는길이 더디기만 한데, 우연찮게 서로 고향이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뛸뜻이 기뻐한다. 소주를 들고 경대 북문에서 밤새도록 술판을 벌였다는 아저씨는 80학번 대구 토박이였다.

한때는 돈을 벌어서 장사를 시작했다는 아저씨의 인생 이야기가 시작되고, 빗소리는 점점 커져간다. 직장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서른이 넘은 나이에 번 돈을 모두 털어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결혼도 하고 나름데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때쯤, 시름시름 앓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암투병을 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병원비 때문에 졸지에 집도 돈도 없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고향을 떠나 새롭게 정착한 곳에서 택시를 몰기 시작했고,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와이프도 암선고를 받고 3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아들 녀석 하나. 애지중지 키우자고 열심히 운전을 했단다. 하지만 3년전에 하나 뿐인 아들 역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가족도 없이 세상에 남은 것은 오직 아저씨 혼자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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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나이 마흔 여섯에 고아가 됐어요"

정붙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그 악몽같은 시간이 되풀이 될까 두려워, 이제 이웃간에도 정붙이기가 힘들다고 한다. 웬지 고개가 숙여지면서 위로의 말도 할수 없는 당황스러운 시간이 흘러 갔다. 하지만 아저씨는 멋쩍었는지 이내 라디오 채널을 바꾼다. 귀에 익숙하게 울려 퍼지는 네박자 트로트 리듬. 내가 편했던지 몇소절을 큰 소리로 따라 부른다.

혼자 살기 때문에 먹고 사는것도 그만큼 수월하다는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주변에 불행한 일이 없었던 내 자신이 무척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가족이 있을때 정말 잘해주고 사랑해 주라고 나에게 당부를 한다. 돈번다고 바빠서 아들녀석 죽기전에 며칠동안 이야기도 못해본게 아직도 한이 된다면서 말이다.

추적 추적 내리는 비가 이젠 심하게 뿌려댄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길속에 익숙한 솜씨로 핸들을 움직인다. 마침내 목적지까지 왔을때 내가 할수 있는 말은 "피곤하실텐데 잔돈은 커피 사드세요" 라는 말 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고맙다는 말을 하며 트렁크에서 낡은 우산까지 꺼내서 나에게 안겨 준다. 괜찮다고 몇번이나 사양을 했지만 이것도 인연이라면서 내 옷에 비가 묻을까봐 걱정부터 한다.

유난히 다리가 허약해 보이던 아저씨의 뒷모습을 본다. 살면서 불어오는 고된 바람을 그 연약한 다리로 버티면서도 웃음을 보일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네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은 영원할것 같고, 갑자기 닥친 불행은 견디기 힘들어 보인다. 내가 오늘도 영위하고 있는 가족과 이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다시 가늘어진 빗줄기를 낡은 우산으로 막아 본다. 물이 고여 있는 곳을 여기 저기 피하면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 본다. 잘 보이지 않기에 피하기도 쉽지 않다. 오던 길을 되돌아 가던 택시의 모습이 보인다. 비오고 미끄러운 아스팔트 길을 오늘도 홀로 달리는 아저씨의 모습이 무척 외로워 보인다. 스스로 택한 길도 아닌데...
마흔아홉살 고아,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던 아저씨가 던진 마지막 말을 되새겨 본다.

" 불행이 쏜살같이 오니까 실감이 안나데,  나처럼 혼자 남으면 욕심이 없어져. 그냥 세월 가는데로 허허 웃으며 사는거지 뭐 .옆에 사람이 없으면 아무소용 없어"

늘 외롭다고 투덜거리지만, 세상에 홀로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가족들도 매번 웃으며 지낼수는 없는것, 나이가 들면서 사소한 욕심 때문에 얼굴을 붉혔던 일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이 있기에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홀로 움직이는 오늘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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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ueclover.tistory.com BlogIcon 2008/06/19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속에서처럼 비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삶속에 수없이 마주치는 사람들 속에
    얼마나 가슴아픈,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는지
    새삼 생각해보게 됩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좋은 글 읽었습니다. ^^

    • Favicon of http://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08/06/19 1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지가 젖지 않으려고 웅덩이를 피해가려 하지만 마음먹은데로 잘 되지 않더군요. 사는것도 그런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새삼 해봅니다.^^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mai20 BlogIcon 이리나 2008/06/19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 세상에......너무 안됐네요 ;ㅅ; 사람의 인생이란 참...

  3. padfoot 2008/06/19 1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족의 소중함
    스치듯 만나는 이웃과의 교감
    가슴이 뭉클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기사아저씨도 가슴속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분을 만나서
    잠시나마 외롭지 않았을 겁니다.

    • Favicon of http://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08/06/19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이웃과의 교감과 존재를 새삼 느낄수 있었네요. 그러면서 서로 헐뜯고 비난하면서 살진 않았나 반성해 봅니다.^^

  4. 2008/06/19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08/06/19 2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하하. 그러네요. 환경이 바뀌니 잠도 잘 오질 않더군요. 누군가가 인증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않았나..진지하게 생각해 봅니다.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jyudo123 BlogIcon jyudo123 2008/06/19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으. 세상이 살기 어려우니.. 정 붙이기 무섭죠..

    • Favicon of http://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08/06/19 2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jyudo123님 정을 붙이고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걸 느끼네요. 마음을 주어야 행복해 질수 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6. Favicon of http://blog.daum.net/qwsde12 BlogIcon 핑키 2008/06/19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우리 주변엔..따스한사람이 많다는걸...

    • Favicon of http://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08/06/19 2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주변을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높은 곳에 있지 않지만, 함께 웃을수 있는 사람들이 지혜롭다는 것을 발견하곤 하죠. 하늘에서 바라 보면 모두 비슷한 크기일것인데, 남보다 더 크기 위해서 아웅바둥 살아가는 모습이 참 씁쓸해 지기도 하네요.방문 감사합니다.

  7. Favicon of http://kkd4139.tistory.com BlogIcon 권대리 2008/06/20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짠해지네요...

    삶이라는게 뭐든 내 뜻대로만 이루어지는건 아닌가봅니다.
    그래서 때론 굴곡많은 삶을 살기도 하지만...
    지금 이순간을 후회없이 보내기 위해서라도 -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겠어요~

    편한밤 보내고 계신가요? ^^

    • Favicon of http://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08/06/21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권대리님 굴곡 많은 삶을 살기에 인생의 맛이 있는것 같네요. 요즘 권대리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8. Favicon of http://lambent.tistory.com BlogIcon BONEUS 2008/07/01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으로부터 느껴지는 이 감정...정말 오랜만이에요.
    이런 소중한 순간순간 후엔 '사랑'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되요.
    정말 영원히 영원히 간직했음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08/07/01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BNEUS님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만권의 지식 보다도, 우리 주변사람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의 소중함과 사랑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9. Favicon of http://wideworld.tistory.com BlogIcon green tomato 2008/07/02 0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이 글을 읽으니 제가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 Favicon of http://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08/07/02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green tomato님 댓글 감사합니다. 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10. Favicon of http://onlocation.tistory.com BlogIcon 빈상자 2008/07/04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일 국가의 정책을 운영하는 이들이 이만큼 국민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수 있다면
    조금은 더 낳은 세상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사실 그들이 택시마다 좇아다니면서 힘드냐고 묻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지만
    최소한 몇만 몇십만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이면 당연히 귀기울여야 되는게 아닌가요?

    적어도
    "요즘 힘드시죠?"라는 말에 모두가 한숨쉬며 토로하는 세상은 안되었으면 하네요

    에휴~

    • Favicon of http://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08/07/04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주위에서 조용히 살아가시는 분들에게서 요즘 참 많이 배웁니다. 남의 길을 배웅하는 분이지만, 그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보네요.^^ 빈상자님 늘 감사합니다.

  11. NOONWHA 2008/07/05 0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이 'pressblog'의 '7월의 MP 후보'에 올랐네요. ㅊㅋㅊㅋ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었는데... 제가 기분이 좋네요. ㅋ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Favicon of http://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08/07/05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방문 감사합니다. 사는 모습을 통해서 많이 배우는것 같아요^^ 후보에 오른것만으로도 의외네요.

  12. Favicon of http://kkommy.com BlogIcon kkommy 2008/07/11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아.. 마음이 짠해지는 글이네요.. ㅠㅠ

  13. Julia 2008/08/24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이 싸~해지는 글입니다.
    이런 마음 아픈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오히려 더 밖으로는 밝게 웃으며 힘을 내시는게
    마음이 더 짠해지는것 같습니다...

    혼자서.. 내 삶은 왜 이렇게 힘든가.. 고민하던 것이 부끄러워집니다.

    • Favicon of http://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08/08/24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우리주위엔 아픔을 가지고 사는 분들이 참 많죠. 그러면서 행복을 찾아 노력하는 분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14. Favicon of http://usedbooks.tistory.com/ BlogIcon 헌책방IC 2010/06/22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엇보다 이 글을 올리신 날짜가 먼저 눈에 띱니다. 2008년 6월이면... 그 때 전 백수생활에 적응하느라 나름 바쁜 날들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그 날은 비가 왔네요. 그렇다면 아마 저도 뭔가 기억을 남겨 두었을 듯. 일기장을 뒤적여 봐야 겠습니다.
    택시를 타면 기사님들이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살이라도 더 먹은 분들께는 뭔가 듣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글을 찬찬히 읽다 보니, 저도 어떤 기억이 하나 떠오릅니다. 사업을 하다 망해서 택시를 하신다던 분인데요, 광화문 한복판을 지날 무렵 손가락을 가리키며, "제가 저기에 있었어요"하던 기억이 납니다.
    인생이란... 정말 모를 일입니다.^^

    • Favicon of http://www.yetz.kr BlogIcon G_Gatsby 2010/06/24 0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끔 택시를 타면 기분이 두가지로 나뉩니다.^^
      불친절하고 까칠한 택시 기사와, 손님에게 친절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따뜻한분하고 말이죠.^^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오손도손 사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기분이 참 좋아지죠.^^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는것 같아요.
      인생 살이라는 것이 이렇게 아쉬움과 희망의 교차점에서 고민하고 기뻐하며 사는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