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풍경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다양한 색깔을 가진다.
그러한 다양함이 모여서 비슷한 색깔을 내게 되고, 우리는 그 공통된 색깔을 보면서 유대감을 느낀다.
낯선 도시에 처음 발을 내딛던 날 아침.
고단한 밤을 보낸 사람들의 발걸음이 무겁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 사람들의 운동복이 산뜻했다.
이른 아침, 상큼한 공기와 함께 운동복 차림으로 도로를 쓸고 있는 한 아저씨를 보았다.
유난히 까만 피부에 짤막한 키의 아저씨는 도로를 정성껏 쓸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수 있는 흔한 아침의 풍경이지만, 내 기억에 남은 이유는 멀리서 큰 도로를 쓸고 오는 청소부 아저씨에게 시원한 물한잔을 건내는 모습 때문이었다.
이미 익숙한 상황인듯 물을 건내는 아저씨도, 받아 쥐는 청소부 아저씨의 모습도 무척 자연스러웠다.
열대야가 남아있던 한여름의 아침, 건네주는 물한잔이 정말 시원해 보였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지나치던 내 눈에 띄인 것은 작은슈퍼마켓에서 뛰어나온 한 아이의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부르는 목소리는 낯설지 않는데, 아이의 외모는 무척 달라 보였다.
10살 정도 되어 보이던 아이의 모습은 분명 어딘가 달랐다.
아이의 뒤를 따라 나온 아이엄마의 모습을 보고나서야 알수 있었다.
엄마의 모습은 확실히 달라 보였다.
아이는 동남아 쪽의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를 가진 아이였다.
이제 주변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모습이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아이는 빤히 바라보던 나를 눈치챘는지 나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언른 고개를 돌리고 가던 길을 서둘렀다.
분명 똑같은 언어를 쓰고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일 것인데, 나는 아이의 모습에서 뭔가 다름을 느꼈다.
그리고 그 눈빛은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지고 아이는 경계의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 준호가 외치던 대한민국~!"
출근과 퇴근을 하면서 아이의 작은 슈퍼마켓에 들러서 물건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그러한 모습이 익숙해 졌다. 하지만 아이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늘 혼자 였다. 또래 아이들이 이리저리 몰려 다니며 동네를 돌아다녔지만, 아이는 좁은 가게 구석에 앉아 TV를 보거나 가게 앞에서 거리를 바라보는게 다였다. 한국말도 또렷하게 잘하고 여느 아이와 다름없이 책가방을 메고 다녔지만 아이는 늘 외로워 보였다. 그 외로움은 처음 만났을때 웬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올림픽이 끝나갈 무렵, 우리나라와 쿠바가 금메달을 놓고 야구 시합을 벌였다.
퇴근해서 돌아오는 길 한산했다. 걸어가는 길목마다 응원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메달 이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막 아이의 가게를 지나가던 그때였다. 갑자기 아이가 뛰쳐 나오며 소리쳤다.
"금메달이다~ 금메달~!!"
아이는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하며, 자리에서 마구 뛰었다. 뒤이어 아이의 아버지가 새까만 얼굴에 함박 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치며 함께 나왔다. 아이의 아버지와 아이는 서로 부둥켜 안고 난리였다. 아이의 엄마는 뒤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언가 함께 기뻐할수 있다는 것이다. 생김새가 다르다고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받던 그 아이도 평범한 우리의 아이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아이인 것이다.
아이의 눈망울에서 기쁨과 희열을 보았다.
아이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느끼고 있었다.
순간 아이와의 첫만남에서 느껴지던 이질감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르다는 것을 생각한 내가 몹시 부끄러워 졌다. 이 아이만큼 기뻐하지 못했던 내가 몹시도 부끄러웠다.
아이 역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당당한 우리나라 사람인것을, 왜 내가 다르다고 생각했던가. 대한민국을 외치며 손뼉을 치는 아이를 보며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제 씩씩한 준호를 보면 인사를 한다. 아이 역시 경계심을 풀고 베시시 웃으며 또렷한 우리말로 인사를 한다. 아침마다 청소부 아저씨에게 시원한 물을 건내주는 아버지와 늘 미소를 안고 살아가는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준호는 인사성도 밝고 착하다. 아이는 여느 이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나의 이웃이 되었다
낯선 풍경은 멀리서 볼때는 이해할 수 없다. 함께 사랑가는 사람들이 조금 다르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채 차가운 시선을 받았을 준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나 또한 차가운 시선의 하나였음을 깨닫고 부끄러워 진다.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까운 풍경속으로 뛰어 들어갈 때 익숙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젠 준호의 눈빛이 낯설지 않다. 준호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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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많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들이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그들의 여전히 '외부인'으로 단정짓습니다.
결혼이민자의 자녀는 '외부인'과 '우리' 사이에 위태롭게 서있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상처가 아이들을 괴롭히게 되겠죠.
이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국적과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행복과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준호도 '우리'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혈연이 어찌 되던, 우리 말을 하고 우리 땅에서 함께 부대끼는, 대한민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예.그렇죠 주변에도 다문화가정이 많더군요. 이젠 익숙해져야 겠습니다. 아직도 사회적 시선은 차별이 있는게 사실이죠. 그래서 저부터 바꿔보자고 생각합니다.
인종차별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물론 아니지만 미국에선 분명 다양한 인종과 출신을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어서 편하고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많아요.
미국 사람을 만났을때 아버지는 폴란드계 독일인이 이민한 세대이고 어머니는 또 중국계와 아일랜드계가 섞였다느니 뭐라뭐라 하면서 복잡한 가족사를 자연스럽게 늘어놓을 때 보면 정말 우리가 목숨같이 여기는 단일민족이란게 뭔가도 싶고.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오는데는 200년 이상의 시간과 고통이 필요했잖아요.
우리나라에 다문화 가정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게 이제 한 십년 조금 넘었나요?
한국인의 정이라면 미국사람들 보다 훨씬 빨리 변화가 올 수 있다고 믿어요^^
네.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역사를 보더라도 인종과 다름에 대한 차별은 있어왔죠. 우리는 단일민족 국가였기 때문에 더 그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에 익숙치 않은 분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것이지 다른게 아니라는것을 생각해 봅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이방인으로 취급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 때마다 문득 느끼게 되는 이질감, 소외감은 결코 유쾌하지 않죠.
한국 국민들의 의식이 폐쇄적인 단일민족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어서 이런 변화를
수용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회에 적응하려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단순한 호기심보다는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겠죠.
성숙한 사회라는것이, 이런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다른게 나쁜게 아니라는것을 알고 미리 배려해줄수 있는 사회겠죠. 결코 쉽지 않은 문제라고 보여지네요. 언젠가 한 혼혈인 가수의 어려웠던 젊은 시절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는데요, 그 시대의 시선이 아직도 그래도 남아있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