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하나.

겨울의 끝자락에 있는 지하철앞 광장.
비가 내리고 난뒤에 불어오는 바람이 아주 차다. 황량해 보이는 광장에는  벤치가 흩어져 있고, 그 주변엔 생활정보지가 여기저기 흘어져 을씨년스럽다. 사람들의 발길을 재촉하듯 바람은 멈추지 않고 불어온다. 그 차디찬 광장의 끝자락에 볼품없이 앉아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눈에 띈다.

 차디찬 바닥에 커다란 보자기를 펴놓고 양말을 팔고 있다. 노점의 모습이 그러하듯 노란 박스종이위에 가격표가 붙어 있2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눈길조차 던지질 않는다. 보자기 끝 찬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안쓰럽다. 아마도 팔아야할 양말을 올려놓을 욕심에 자신의 무릎은 보자기에 걸치지도 못하고 차디찬 바닥에 내려놓았나 보다. 

 울긋 불긋 꽃무늬가 들어가 있는 여성용 양말. 앙증맞게 귀여운 아기들 양말이 한가득 널려 있다. 아마도 지난 겨울에 다 팔지 못해서 조금 더 지나면 팔리지 않을 겨울양말인것 같다. 시선은 양말더미 뒤에 있는 아주머니의 야위고 지친 얼굴을 바라본다.

양말 한켤레.

 아주머니의 작은 노점 앞으로 다가간다. 아쉽게도 남성용 양말은 없다. 양말을 선물할 아내도 없다. 양말을 신을 아이도 없다. 순간 우물쭈물 당황한다. 검은 양복입은 낯선 사내의 모습에 아주머니도 당황한다. 그러다 잠시 시선이 마주쳤다.

" 신사용 양말은 없는데...."

 비록 내가 신사는 아니지만 아주머니 말대로 내가 신을 양말은 없어 보였다. 정장에 꽃무늬가 새겨진 여성용 양말을 신고 다닐 용기가 내겐 없다. " 2개 1,000원" 이라는 노란색 가격표가 보인다. 뭔가 대꾸를 하면서 사고는 싶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 우리..아이.. 주려구요....."



아주머니는 흰색과 검은색이 들어가 있는 양말을 골라 보여준다. 작은 스누피가 웃고 있는 모양이 들어가 있다. 양말에 개그림이라...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걸 사기로 한다. 같은걸로 2개를 고르고 만원짜리 한장을 건냈다. 거스름돈을 주려고 하는 아주머니에게 잔돈은 됐다고 말한다. 아주머니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것만 사면 되니까 그냥 가지세요 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막무가내로 잔돈을 내게 건내준다. 추운데 커피라도 한잔 하시라고 우겨본다. 그러면 안된다고 말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겨울바람탓에 거칠어 보인다.

웃으며 돌아서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양말 두켤레를 더 쥐어 준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며 어쩔줄 몰라 하는 시선을 거둔다. 나도 어색하게 많이 파시라고 말하며 돌아선다.

황량한 거리엔 바람이 매섭게 몰아친다. 걸음걸이 마다 뜨거운 입김이 흘러 나온다. 차가운 콘크리트에서 하루종일 양말을 파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다시 눈에 보인다. 슬픈 감정이 밀려왔지만 양말에 새겨진 스누피는 아직도 웃고 있었다.


기억 하나.

집으로 돌아와 양말을 꺼내어 벽에 걸어놓았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클로스가 양말에 선물을 준다고 하던데, 시즌을 넘겨 버렸으니 소용이 없을것 같다. 그래도 혹시 좀도둑이라도 들어와 살림살이가 빈곤한걸 보고는 돈이라도 넣어주고 갈지 누가 알겠는가. 벽에 걸린 스누피를 마치 훌륭한 그림이라도 감상하듯이 오랫동안 쳐다 본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은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것 같다. 살아가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우리들의 모습도 변하지 않는것 같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도 변하지 않는것 같다.

자식에게 버림받고 양로원에서 죽어가던 한 노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살아오면서 배우지 못한 설움이 제일 큰것 같다. 돈을 버는 방법을 모르고 그저 착하게만 살아왔던게 한이 된다. 나이는 먹었지만, 세상을 배우지 못한것이 제일 후회된다. 노인은 그렇게 서글픈 말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계절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 간다. 시대는 우량아를 요구하고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관심을 거두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느껴야 하는 진실과 감정이 메말라 간다. 겨울 바람은 매서운 생존의 끝자락에서 뜨거운 심장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벽에 걸린 양말을 보면서 하나를 기억에 담아 본다.
아주머니가 파는 양말에는 삶에 대한 치열한 눈물이 묻어 있었다. 양말의 의미는 동정과 슬픈 감정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하고 소박한 우리들의 희망일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의 의미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는 이야기 > 우리시대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의 왼발이 되어줄께  (6) 2009/03/19
스누피 양말의 희망  (12) 2009/03/13
흔들리는 시선 - 사랑한다 친구야  (4) 2009/02/08
바보 형과 길 잃은 강아지  (6) 2008/12/18

http://www.yetz.kr/trackback/37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K. 2009/03/13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죠.
    거스름돈을 극구 사양하셔서, 받지 않으려고 했던 제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사다 드린 음식은 환한 웃음으로 받으셔서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던 기억이 나는군요.
    불편한 몸으로 장시간 서 있기도 힘들텐데, 아주 번잡한 사거리에서 독서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죠.

    근데, 왜 스누피 싫어하세요? 귀엽잖아요~~~ ㅎㅎ

    • BlogIcon G_Gatsby 2009/03/14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누피 귀엽죠.^^ 가끔 느긋하게 살아가면서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분들을 봅니다. 볼때만다 존경스럽더군요. 부자란 재물이 아니라 나눌수 있는 마음을 가진자만이 누릴수 있는 행복인것 같아요.^^

  2. 2009/03/13 2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3. BlogIcon sandman 2009/03/14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쌀쌀한 날씨에 가슴 따듯해지는 글,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G_Gatsby 2009/03/14 1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sandman님 방문 감사합니다. 마지막 추위가 왔나봐요. 겨울보다 더 추운 바람이던데요. 이 바람이 지나고 나면 파릇파릇한 봄이 오겠죠?^^

  4. BlogIcon 날자 여치 2009/03/15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가 매서운 바람속에서 파지를 모으고 있는 할머니와 마주쳤었는데, 그 곱은 손이 눈에 들어와 사라지지 않더군요. 집으로 가던 길을 되돌려 호빵과 캔커피를 사들고 할머니 옆에 앉아서 같이 먹고 돌아서는데, 뭐랄까요.... 쓸쓸한 기분? 개츠비님은 가끔 제가 잃어버리고 있던 따뜻한 기억을 하나하나 찾아주시는군요~!!!

    유부남으로 변신할 수 있는 따뜻한 심지~!!!

    • BlogIcon G_Gatsby 2009/03/15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서 세상이 달리 보이는것 같아요. 우리가 욕심을 내야 할것은 내 안에 있는 한없이 자유로운 느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날자여치님도 좋은 기억이 있으시군요. 관심과 공유, 사랑의 감정이 가장 행복하고도 이쁜 기억인것 같아요. 방문 감사합니다.^^

  5. BlogIcon 볼 우 물 2009/03/16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믹시업이 3번밖에 안된다는게 안타까울만큼 좋은 글입니다.양로원 할아버지의 말이 참 가슴에 남네요.

    • BlogIcon G_Gatsby 2009/03/16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볼우물님 방문 감사합니다. 삶의 마지막에 있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곧 삶의 진리가 아닐까 생각해요. 헛된 지식이 가득한 삶 보다는, 지혜로움이 가득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추한곳에 오셔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6. BlogIcon 대따오/불면증 2009/03/20 1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느낌을 알것같아 씁쓸함을 같이 느끼게 되네요.

    • BlogIcon G_Gatsby 2009/03/20 1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따오/불면증님 방문 감사합니다. 그래도 산다는 것은 희망이어야 하겠죠. 서로 시선을 피하기만 하는 요즘 현실을 보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 봄이네요. 가끔은 꽃이 피는 모습도 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