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킨트의 소설 ‘콘트라베이스’를 보면 소설의 주인공이 독자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마치 한 사람의 심각한 고민을 옆에서 들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독백 형식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의 감정을 확실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
라우라 레스트레포의 소설 ‘광기’도 나에게는 그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쉴새 없이 지껄이는 듯한 자유로운 인칭의 활용은 그들의 이야기속에 빠져들어가기 충분했다. 다만 현실과 생각의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이야기의 흐름을 놓칠 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정말로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듣는 듯 한 느낌도 함께 받는다. 그럼에도 소설 ‘광기’의 몰입도는 대단하며, 분산되어 있던 이야기들이 나중에는 하나로 모여진다.
소설 ‘광기’는 평소에 접해보지 못했던 콜롬비아의 천재적인 작가의 작품이고,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인간의 내면에 미친 듯이 날뛰는 의식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에 대한 찬사는 전혀 아깝지 않다.
콜롬비아의 아픈 현실에 바탕을 둔 소설이지만, 남미대륙의 아픈 역사를 자세히 알길이 없기에 작가가 말하는 사회적 광기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세대를 이어오며 사회적 광기 속에 벌어지는 미쳐가는 인간이 느끼는 의식의 고통은 희미하게 나마 이해할수 있었다.
광기 - 비극의 시작.
소설에는 미쳐버린 세명의 사람이 나온다.
하지만, 읽어 갈수록 비정상적인 사람은 그 세명만이 아니라 그 주위를 머무는 사람들도 그에 못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작가는 개인적 광기의 모습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 연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의식에도 있다고 본 것이다.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어릴 때 받은 충격으로 비정상적인 의식구조를 갖게 된다.
어릴적 받았던 누나에 대한 기억은 그의 의식 속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고통으로 남는다. 그래서 그는 현실의 세상을 살면서도, 어린시절에 느꼈던 그 기억의 공간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즉, 그의 세계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모습이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쳐지는 묘한 경계선에 머물러 있다.
그의 광기는 친누나의 고통속에서 보았던 性에 대한 불편한 생각과 동성애에 대한 꿈,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자를 도와야 한다는 끝없는 죄책감을 만들어 나간다. 그는 결국 자신의 의식이 만들어낸 경계선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육체적인 죽음으로 그는 사라졌지만, 그의 광기는 사라지지 않고, 그를 지켜봤던 딸들에게 이어지게 된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그러한 광기를 물려받는다.
성에 대한 보수적인 생각들과 자신의 가족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남편과 언니의 불륜을 모른척 지나가야 했다. 그녀에게는 사실과 진실보다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잘 정돈된 화목한 가정과 계급의식이 더 중요하다. 그녀의 가족 모두는 구성원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거짓된 현실을 인정하며 그것을 당연시 여긴다. 그들의 가족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그들의 세계에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진실된 세상에 살면서 거짓된 세상을 만들어가는 집단적 광기로 만들어 진다.
그러한 가정속에서 아버지의 구타, 어머니의 절제되고 거짓된 세상속에서 살아온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어머니보다 훨씬 더 나아가게 된다. 대를 이어오면서 만들어진 광기는, 그녀를 결국 완전히 미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가족들의 광기는 그들의 약속된 거짓속에서 표출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광기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게 된다. 그녀는 확실히 과거의 기억과 현실속에서 오고감을 되풀이 한다.
광기 - 미치지 않은 자가 누구인가.
라우라 레스트레포는 그녀의 소설을 통해서 끊임없이 의식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마치 옆사람에게 이야기 하듯이 말하는 그녀의 문체를 읽다 보면 누가 정상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다. 소설 ‘광기’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주인공들이 내뱉는 말을 통해서 광기가 만들어진 이유가 하나둘씩 밝혀진다. 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사회주의 운동이 확산되던 당시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아픔을 안고 살아가던 상류사회의 고립된 의식도 표출된다. 폭력과 광기에 의해서 손상된 인간의 의식은 언제나 공허하고 슬프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주변의 사람들 역시 슬프다.
광기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유전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경험한 적이 있는 사회적 광기는 개인의 의식을 파괴할 정도의 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파괴된 의식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내뱉는 고통의 절규가 소설에는 담겨 있다.
소설의 문체와 인칭이 상당히 독특하다. 특별한 줄거리가 없는것 같지만 3대를 이어오면서 만들어 지는 그들의 광기의 역사가 담겨 있다. 또한 분산되었던 시선이 하나로 묶여 진다.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소설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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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광기를 어떤 식으로 책에 담아냈는지 참 궁금합니다.
광기도 유전이 되나 봐요. 아무래도 주위 환경탓이 크겠지요.
소설 속 섬뜸함이 궁금하고 한번 느껴보고도 싶네요.
처음에는 누가 미쳤는지 명확하지만, 읽을수록 누가 미쳤는지 알기 힘들더군요.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의 의식을 언어로 표현한다는게 놀랍습니다. 사회적 광기와 유대감을 가진 공동체에서 개인의 광기는 만들어지는게 아닐까 생각하네요.^^
저도 읽고싶던 책인데 기회를 못 잡았네요...
서평 보니 더 읽고 싶어지는 걸요??
잘 읽고 갑니다 ^^
기대했던 만큼 좋았던 책입니다. 책 표지부터 좀 그랬는데, 읽고 나니까 꽤 섬찟하더군요. 표현하긴 힘들지만, 다 읽고 난뒤에 느껴지는 무언가가 참 오래남는것 같습니다.^^
미치고 미치지 않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것 같습니다.
광기 하니까, 광주학살의 희생자 가운데 한 소녀를 그린
꽃잎처럼이란 소설이 떠오르는군요.
장선우 감독의 꽃잎이란 영화로 각색된 바 있죠.
그 소설에서 나오는 소위 '미친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생각과 행동을 좇고 있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그 '미친년'이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로 비쳐지더군요.
소설을 잘 쓴 것이겠지만, '광기'가 사회적 정의, 관계적 정의, 경험적 정의 속에 존재함을 봅니다.
현실로 와서^^
아마도 미치지 않은 자는, 조중동한테 욕먹는 사람들일 거 같습니다.
딴나라당 국개의원들한테 좌파로 몰린다면 지극히 정상인이라고 보면 되구요.
G가 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냐고 태클을 걸어온다면 제 정신 가지고 살고 있는 겁니다.
꽃잎이라는 영화 알죠. 사실 우리도 소설속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광기를 충분히 겪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신과 주관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회가 만들어 내는 특별한 생각들을 정답인듯 쫓고 있는건 아닌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중동 쓰레기들의 밥그릇 투쟁은 이제 한심할 정도 입니다. 예전처럼 알듯 말듯 유도하는 스킬도 사라지고, 이제는 대놓고 말도 안되는 말을 하더군요. 이런걸 보면 이제 그들의 운명도 마지막 발악의 단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난세에는 영웅이 나온다고 했죠. 누군가 조중동의 목을 베어버리는 불세출의 영웅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소설 엄청 난해해서 저도 읽기 무척 어려웠죠.
책장을 수시로 앞으로 넘기고 하면서, 반쯤 읽다가 던져놓았는데.....
고생하셨네요. ^^
사람의 머리에 떠도는 생각을 글로 써 내려간다는게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읽어 내려가는 사람도 쉽지 않겠죠.^^ 저는 취향이 맞는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난해 하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소설이 있는것 같아요. 하늘엔별님 말씀처럼 사실 읽기는 좀 어려웠습니다. 그 흔한 대화체의 따옴표도 찾을수가 없더군요.^^
최근의 포스팅을 보면 개츠비님 블로그가 점점 더 재미나집니다.
저만 몰랐던 것일까요? 저의 무지에 자비를 자비를...
주말과 휴일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요.
갈수록 넋이 나가고 있어서 그런게지요. 세상이 절 이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요즘 두서없이 정신이 산만하네요. 건망증도 심해진것 같고.. 그래서 시간 가는줄 잘 몰랐습니다. 첫눈이 얼마전에 왔죠. 첫눈같은 기쁨이 충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궁금하게 만드는 책 리뷰네요..^^.
광기, 뭔가에 집중하는 뭔가에 미쳐있는 모습이 상상되는 말이지만..
솔직히 조금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사회적 광기가 만들어내는 현상들이 가장 먼저 떠 오르네요...
어쩌면..지금도 그런 광기속에 이 나라가 흘러가나 싶기도 하구요.
힘있는 자의 앞뒤 안가리는 광기와 속는 줄 알면서 손을 들어주는..사회적 분위기....모두 광기 같습니다.
광기가 부정의 의미인것은 맞는것 같습니다. 다만 여러가지 사회적 광기가 개인의 광기를 만들어 가는것도 있는것 같구요. 아마도 속고 속여야 하는 당시 시대적 상황들이 잘 맞아 떨어진것 같기도 하네요. 우리도 지금 헛된 욕심을 꿈꾸는 것이 진리인듯 여기는 사회적 광기 속에 사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사회속에서 여러부류의 광인들이 나오겠죠.
표지 그림이 뭐였더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에드바르트 뭉크의 <마돈나>네요.
성모의 고통스러움과 비극의 환희.
순결한 창녀가 케롤을 노래합니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첫눈이 부유하는 축복받은 소공동 사거리 모퉁이에서 예수가 걸어옵니다.
누더기 옷을 입은 예수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내게 입맞춰줘. 칼을 보면 찌르거나 찔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선혈이 흐르기 시작하는 가로등.
마돈나의 노래가 한가합니다. 오늘 밤에 다녀 가신대.
오늘 밤에 다녀 간 마돈나의 손님들은 소공동 뒷골목에서 노상 방뇨를 합니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광기'의 세대적 전이와 공시적 감염.
저는 쥐스킨트도 라우라 레스트레포도 모르지만 어쩐지 알 것도 같습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마돈나 인것 같습니다. 광기라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도 지배하고 있겠죠. 불신지옥의 시대, 자신을 믿지 않으면 좌빠 빨갱이가 되는 세상입죠. 쥐스킨트의 우울한 작가관도 떄론 맘에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