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눈 속에 갇혀 있던 회색 도시가 본래의 색깔을 되찾기 시작 합니다. 종종 걸음 치던 아이의 걸음이 빨라지고, 대머리 아저씨의 웅크렸던 어깨가 펴집니다. 학원가는 아이들은 따뜻한 입김을 쏟으며 수다를 멈추지 않고, '도를 아십니까'를 포교하는 아주머니의 시선이 매섭게 저를 쳐다봅니다. '돈을 아십니까'로 컨셉을 바꾸면 사람들이 귀담아 들을텐데 말이죠.
얼마나 오랫동안 옷을 갈아 입지 않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아저씨가 지하철입구옆 양지에 앉아 있습니다. 아저씨가 위에 걸친 것은 본래의 색깔을 알수 없을 정도로 바랜 담요였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촛점없는 눈동자와 기름조차 흐르지 않고 엉켜버린 머리카락. 때가 타 까많게 변해버린 손과 발. 조그마한 플라스틱 바구니가 아저씨가 가진 전부인것 같습니다.
천원짜리 몇장과 동전을 모두 털어 바구니에 넣습니다.
얼어붙은 목소리로 희미하게 소리를 냅니다.
"감사합..."
날씨가 풀리긴 했어도 거리에 앉아 보내기엔 너무 추운 날씨 입니다. 어두운 지하철 입구로 내려가는 길이 오늘따라 더 어둡게 느껴집니다.
# 1
경상북도 어느 지역으로 파견 근무를 간 적이 있습니다.
급격한 도시화로 인구가 갈수록 줄고 있는 도시의 풍경은 한가로웠습니다. 그곳에서 반년을 보내며 보았던 한 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릴때 병을 앓았는지 약간 모자란 아저씨였습니다. 길바닥에서 행상을 하는, 칠순이 넘은 노모 옆에서 응석을 부리던 오십이 넘은 아저씨였습니다.
하루종일 아저씨가 하는 일은 시장 길바닥을 오고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리로 왔다가 저리로 가고, 사람들과 부딪치면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 아저씨가 하는 말은 딱 세마디 였습니다.
"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사람들하고 부딪치면 습관적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누군가 길을 물어도 그 말만 했고 누군가에게 혼을 날때에도 그 말만 했습니다. 그저 할줄 아는 말은 그 세마디 밖에 없는것 같았습니다. 한적한 동네라 아저씨의 특이한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이방인인 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길을 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습관적으로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 2
노모가 길바닥에 쓰러졌을때 주위에는 난리가 났습니다.
수십년동안 그 거리에서 행상을 하던 노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웃 사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노모와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저씨에게 세마디 말을 가르쳤던 늙은 목사님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저씨의 어깨를 어루만졌습니다. 아저씨는 무언가 중얼거리며 성경책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아저씨에게 노모의 영정사진을 갖다 주었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할머니의 모습을 아저씨는 뚫어지게 쳐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웅얼거리는 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 미안해요....고마워요....사랑해요..."
아저씨는 노모의 사진을 보며 멈추지 않고 오랫동안 그말만 되풀이했습니다.
노모가 야채를 팔던 그곳에 이제는 아저씨가 앉아 있었습니다. 연두색 플라스틱 바구니를 앞에 두고 얼어 붙은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멍한 눈빛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예전 처럼 거리를 돌아다니지도 않고 마치 동상처럼 그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주머니를 털어 천원짜리 몇장을 아저씨의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아저씨는 웅크린 다리를 떨며 다시 중얼거렸습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따뜻한 전철 의자에 앉아서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죄를 짓고 사는것도 아닌데 무엇이 그리 미안할까, 누구 하나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데 무엇이 고마울까, 누구 하나 사랑해 주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리 사랑한다고 말할까 하고 말이죠.
어느새 어둑해진 거리를 다시 걷습니다.
거리에는 젊은이들의 웃음과 소음으로 가득차있습니다. 겨울이 춥게 느껴진다는 것이 참 사치스럽게 느껴집니다.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 어디선가, 아저씨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거리에는 젊은이들의 웃음과 소음으로 가득차있습니다. 겨울이 춥게 느껴진다는 것이 참 사치스럽게 느껴집니다.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 어디선가, 아저씨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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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남는 말이네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2010/01/19 13:47 Tracked from socialstory 삭제이미지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ac_jalali/224445041/ 이웃 블로거이시자, 늘 삶의 단편들을 멋진 글들과 함께 블로그를 운영중이신 G_Gatsby님께서 최근에 블로그에 올려주신 글 하나를 본 후에, 오랜시간동안 그 글이 가져다 주는 긴 여운때문에 많은 시간을 잠못이루고, 스스로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가졌으니, 좋은 글 한편이 가져다 주는 영향이 이렇게 큰줄 미처 몰랐네요. ^^ >> 미안해요, 고마워..

댓글을 달아 주세요
좀 삐딱한 제 머리엔 역시 정작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하는데 그런건 못배운 지체높은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다 가져가고도 미안한줄 모르고, 그렇게 용서하고 기회를 주고 있는데도 고마운줄 모르고 말이죠...
그러고보니, 그저 사랑해야한다는 말이 싫어..제가 종교를 못가지고 있는건지두 모르겠다 싶습니다....ㅡㅡ;.
네 저도 절실하게 원하는 종교가 없습니다. 물론 누가 물어 보면 불자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정작 불자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 보면 부끄럽습니다.
어쩌면 늙은 목사님에게서 배운 세마디가 불편한 삶을 이어가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힘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찬바람이 불때면 가끔 아저씨의 힘없는 눈동자가 생각이 나네요.
비밀댓글 입니다
저도 늘 같은 마음이라죠.^^
인생의 깊이는 모르지만, 가슴속에서 울어나는 깊은 울림은 느낄수 있는것 같습니다.
가슴이 아프네요.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 전에 다큐작가가 되겠다며 카메라를 들고 걸인들을 찍던 제가 떠오르네요.
그 땐 참 의욕적이었는데... 사람들에게 무지막지한 욕을 먹고 나선 카메라보다 손을 먼저 내밀게 되더군요.
이런 분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정말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키가 자라지 않아서 그저 동정심만 가질수 밖에 없는게 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승자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는게 부끄럽다는 생각도 드네요. 저도 작은 관심조차 가지지 못한게 후회되네요.^^
도를 아십니까, 요것이 돈을 아십니까, 로만 바뀌어도 꽤나 대박일텐데요. ^^
미안해오, 고마워요, 사랑해요.
이 말이 뇌리에 각인되기까지 그 목사님의 노고는 어떠했을지 짐작이 되질 않습니다.
저 역시 최근 며칠 지하철 입구에 엎드린 석고대죄의 자세로 동정을 구하는 분들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추운 날씨라는 것도 사무치게 기억에 새롭구요.
아. 저분들 굉장히 추울텐데. 추위를 이길만한 무언가가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밀려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봐도 '돈을 아십니까' 이게 먹힐것 같습니다. 돈돈 하는 세상에 누가 득도에 관심을 갖겠습니까. 물론 G의 세상에서 득도한듯 행동하는 설치류의 무리들도 있습니다만..
그쵸..많이 춥겠죠.못생긴 발가락도 내 몸의 일부인데,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도 우리사회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소설가 김연수가 자신의 글 중 가장 좋아하는 문구라지요.
정작 저런 분들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분들은
그저 조금만 사는데 여유가 생겼으면 하는 분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나아지겠지 하며
치이고, 질퍽거리고, 힘들고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분들.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무는 불면의 밤.
우와~ 정영음 랜덤 다시 듣고 있는데요. 정말 좋은데요. 이분은 뭔가 있어요.
늘 그리운 분이죠.
저도 제 블로그에 올린글을 보면서 생각을 하곤 합니다. 불면의 밤이 이어질때 들리는 목소리가 참 많이 위로가 되죠. 비록 생방송은 아니지만 지난 목소리를 통해서 위로를 받는 것만해도 행복하네요.
울림이 있는 목소리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것 같습니다.^^
비밀댓글 입니다
나른하고 배고프고 멍한게 매주 반복되는 이시간의 모습이죠.ㅎㅎ 배부른 돼지는 졸립고, 졸리운 돼지는 침대를 찾고..뭐 그런게 아닐까요.^^
무거운 이야기네요...회색도시라는 그 '회색'이 참 와닿습니다.
한동안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었는데, 그동안 저 아저씨와 같은 분들은 겨울을 잘 나셨는지 모르겠군요..
주위를 돌아보면 포근한 풍경도 많고 이렇게 쓸쓸한 풍경도 많은것 같습니다. 겨울나기가 쉽지 않죠. 인간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회색빛 도시가 더 쓸쓸해 보입니다.
주말에는 참 포근했습니다. 이번 한주도 활기찬 시간 만들어가세요.
목사님이 이럴 땐 '미안해요', 저럴 땐 '고마워요', 그럴 땐 '사랑해요'라고 말하도록 가르쳐줬겠죠?
아저씨는 어떤 상황에서건 3단 콤보로 말씀하시지만... ㅎㅎ
암튼 부모님 생각이 갑자기 납니다.
아저씨가 저보다 훨씬 낫네요. 저는 항상 죄송하고,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표현을 잘 못하거든요.
아마 그랬을테지요. 늙은 목사님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못나고 아픈 어린 양도 목사님의 눈에는 똑같은 양이었을테지요. 저도 늘 그렇습니다. 표현하지 못하고 후회하곤 하죠.^^
한주의 시작 활기차게 하시기 바랍니다.
여운이 남는 말이네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ㅠㅠ
아저씨가 세상에서 할수 있는 말이 그 세마디 밖에 없었던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저씨가 계시는 곳이 권대리님이 사시는 곳이죠? ^^
그런 분들을 보며 따뜻한 집과 가정이 있다는 걸 고맙게 생각하는 제가 마치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ㅜ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사라지지 않는 현실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못생긴 발가락도 우리의 일부인것처럼, 힘들어 하는 주변분들의 모습도 우리의 일부인것이죠. 못났다고 잘라내면 흉해질것 같습니다.
제가 잘 하지 못하는 몇 마디를 매일 입에 달고 사신다니 부럽습니다.
생존을위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미안해도 대수롭지 않은척,
고마워도 그쯤이야 당연하다는 척,
사랑하지만, 절대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척 하며 살아가게 되네요..
삶의 기억은 감정의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하죠. 삭막해지는 세상이지만, 우리가 갖는 감정 만큼은 따뜻하게 데워야 할것 같습니다. 저도 Slimer님의 말씀처럼 부끄럽습니다.
우연히 왔다가 눈물나서 혼났습니다. ㅠㅠ
이런 분들을 무심히 지나쳤던 저를 반성하고 갑니다.
우연히 보게 된 삶의 풍경들이 무심하고 건조한 우리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때가 많은것 같습니다. 못난 발가락도 우리의 일부이듯이 이 분들도 함께 사는 우리 삶의 일부분이겠죠. 방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