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또 추워집니다.
바지를 사서 세탁소에 줄여달라고 맡겨놨더니 아저씨가 9부바지를 만들어놨습니다. 가뜩이나 길지 않은 다리인데 한없이 짧아 보이네요. 아저씨에게 항의를 했더니 말없이 자기일에만 집중합니다. 덕분에 길이가 많이 짧은 바지를 입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걷는 동안 바람이 솔솔 들어오네요. 추운건 참을수 있지만 짧은바지는 참 창피합니다.
노란 귤봉지를 든 젊은 부부가 길을 걸어갑니다.
어쩌면 연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씨가 추운지 서로 꼭 붙어 있습니다. 여자분이 귤을 까서 남자의 입에 넣어줍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이 머금어 있습니다. 행복해 보입니다. 어두워지는 거리를 그렇게 팔장을 끼고 걷습니다. 아마도 두사람은 모르겠죠. 뒤에는 9부바지를 입고 씩씩거리며 걷고 있는 독거인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 1
몇해전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차를 가져오지 않아서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참 많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신문도 보고 책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복잡한 차안에서 말이죠. 엉덩이가 큰 아주머니에게 밀리고 밀려서 노약자석 앞까지 쫓겨갔습니다. 좀 있으면 내려야 하는지라 힘으로 버텨봤지만 제가 감당할만한 힘이 아니더군요. 괜히 힘겹게 버티다가 구두만 밟혔습니다. 서러움과 억울함이 밀려왔지만 항의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아주 자그마한 남자분이 옆에 있었습니다.
무언가 품속에서 꺼내더군요. 얼피 보니 백지에 휘갈겨 쓴 편지 같았습니다. 출입구에서 자꾸 미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남자분에게 밀착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봐도 될 편지의 내용까지 보게되었죠. 결코 고의로 본것은 아니었습니다.
"쉽지만 쉽지않은 말"
'사랑하는 자기야'로 시작되는 편지였습니다.
맞벌이 하는 처지라 자주 볼순 없지만 너무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아침밥도 못챙겨줘서 미안하다는 말도 있었구요. 일이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이겨내자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자는 바쁜 출근시간에도 자신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나 봅니다. 편지를 읽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번집니다. 편지를 소중하게 다시 접어 주머니에 넣습니다. 남자의 작은 어깨가 듬직해 보입니다.
내릴곳이 다가오자 남자가 노련한 솜씨로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갑니다. 저도 남자의 듬직한 어깨를 따라 재빠르게 움직입니다. 남자는 엉덩이가 큰 아주머니도 가볍게 밀치고 나아갑니다. 덕분에 뒤를 따라 무사히 차에서 내립니다.
계단을 오르는 남자의 모습이 참 가볍습니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을테지요.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는 것같습니다.
# 2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것들을 미루면서 살아갑니다.
그저 뻔한 말과 뻔한 인사치레로 쉽게 '사랑'을 이야기 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도 특별한 자격이 필요해지고, 결혼을 하기 위해서도 특별한 조건이 필요해집니다. 소박하고 열정적인 사랑은 그저 마음속 한구석에만 있는지도 모르죠. 생각해보면 이렇게 사랑은 아주 쉬울수도, 아주 어려울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요즘 '사랑'은 누군가에 의해서 비교되는지도 모릅니다.
보다 편한 것을 추구하는 세상에서는 '사랑'의 조건과 기준이 필요한것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러한 '사랑'은 늘 공허하고 부족함을 느끼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의 '사랑'이 누군가의 '사랑'보다 멋지길 바라게 되고 그러면서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보이는 것'에만 집중됩니다. 하지만 '사랑'은 가격표가 붙여져 진열되어 있는 상품이 아닐겁니다. 내것이 되면 식상해지고 또 다른 것에 시선이 가는 그런 상품말이죠.
값비싼 세상의 어떤 물건보다도, 소박한 아침 편지가 더 소중해 보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겠지요. 느낌없이 되풀이 되는 백번의 말보다도, 진심이 담겨 있는 소박한 말 한마디가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큰 힘이 되겠지요. 누구와의 비교도,어떠한 조건도 필요없는 사랑이기에 후회도 없을것 같습니다.
부부싸움과 쿵쿵거리는 소리 때문에 밤마다 불면의 세계로 나를 끌고 다니던 옆집 부부가 이사를 갔다고 말이죠. 이제 편히 잘 자겠다는 말을 전하며 9부바지에서 시선을 떼지 않습니다. 세상 눈치 보고 살게 뭐 있겠습니까 제멋에 사는 것이죠. 오늘밤에 찾아올 고요함을 즐기면서 소중한 사람에게 짧은 편지 한줄 써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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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층간소음으로.. 아니 옆집소음으로 부터 해방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저도 편지 많이 좋아하는데 말이죠.. 요즘은 편지를 주고 받을 사람을 찾기가 힘듭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한 두번 시도하다가도 끊기기 일쑤구요.
그나저나.. 9부바지 아까워 어쩐데요.. 입고다니기에는 더 두꺼운 얼굴이 요구되니 말이죠..
새벽에 떠드는 소리에 잠을 못잤는데 이제는 잘 잘것 같습니다. 혹시 모르죠...더 시끄러운분들이 올지도요. 이것도 복인것 같습니다. 9부바지는 뭐 어쩔수 없네요. 기장을 줄이는것도 쉽지 않군요.;
노란 귤봉지의 젊은 연인과 좀 창피한 9부 바지.
맞벌이 부부의 애틋함과 엉덩이에 압사된 예비 9부 바지.
짧았던, 불면의 밤과 아침 편지와 9부 바지. 어쩜, 이리 맛깔날까요.
겨울에 기장이 짧은 바지는 춥습니다. 비율적으로 하체가 짧은 사람에게는 더 춥게 보이죠. 세상 사는게 뭐 이런게 아니겠습니까. 때로는 춥기도 하고 때로는 따뜻하기도 하고...으흐흐
좀 큰 망치를 준비하실 일은 없으셔야 할텐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 한해 좋은 일만 있으시라고 옆집의 소음인부부는 이사를 갔군요. (소음인. ^^)
9부바지면 겨울에 많이 시릴텐데, 특히 발목이 장난 아닐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패션은 창조하는 것이라 했지만, 추위도 패션은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젊디 젊은 여자들 이야기고요. 우린 그냥 젊은 남자일 뿐입니다. 흣.
울림이 있는 글, 울면서-.-;;; 잘 보고 갑니다.
이런 울림이 있는 글을 써야 하는 것인데, 라며 울며. ^^;
철물점 앞을 지날때마다 큰 해머에 눈길이 가곤했습니다. 소음인부부가 이사를 가서 이제 좀 안정된 시간을 보낼수 있을것 같네요. 이것도 작은 행복이랄까요? 세탁소 아저씨가 참 괘씸합니다. 요즘 9부바지가 유행은 아니지 않습니까. 유행이라 하더라도 입기 어려운 그런건데 말이죠. 안되는 놈은 잘 안되나 봅니다.크큭..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셨군요. 요즘 대세가 '루저'라면서여-.-?
9부 바지 휘날리며 '씩씩'거리고 걸었을 개츠비님을 연상하며.... -.-;;;
푸하핳~~~ 웃다 의자서 쓰러졌다눈;;; 바지를 줄여서 입어야 한다눈 건...
시대의 비극임돠..
시대의 주류인 루저죠. 많은 사람들이 루저의 대열에 있다고 봅니다.크큭.. 바지 기장은 줄여 입어야 합니다. 저만 줄여 입나요? ㅎㅎ 암튼..짧아서 슬픈 짐승은 어제도 많이 울어댔습니다.
여름이나 봄, 가을에는 저도 9부바지를 종종 입긴 하지만
겨울에 9부바지는 보기에도 추워보입니다.
수선은 세탁소보다는 역시 수선집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
의도적으로 안볼 수도 있었던 편지를 또 굳이 읽어 보셨군요.
전철안에서 괜히 남의 휴대폰이나 신문에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훈훈한 내용이라 다행입니다. 부디 개츠비님께도 그런 러브레터를 보낼 대상이 하루빨리 생기셨음 합니다.
9부바지도 Reignman님처럼 '위너'가 입어야 패션이 되는것이죠. 저 같은 루저가 입으면 단지 컨츄리보이가 될뿐입니다.^^ 바지 길이 줄이는것도 맘대로 안되는군요. 흠흠... 저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가깝고도 멀리 있죠. 늘 그립고 늘 보고 싶은...뭐 그런 사람이 있네요. 마음속으로는 늘 러브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어요.크큭.
우선 축하드립니다. 망치질은 더 안하셔도 되시겠네요.
경비아저씨의 눈길에 혼자 막 웃었습니다..ㅎㅎ..
혹시 모르죠..아저씨가 개츠비님의 패션을 추종할런지도..
글이 가슴까지 전해지는 느낌입니다.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너무 좋네요.
포스팅하기가 더 부담된다는..ㅎㅎ..
이제 머릿속에서 해머를 지웠습니다. 경비 아저씨의 눈길에서는 선망과 동경의 시선을 느낀건 아닌것 같습니다. 민망함과 조롱의 시선이었지요.;; 아무튼 이제 숙면의 밤을 이어갈수 있을것 같습니다. 숙변과 숙면..정말 중요한것이죠;
유통기간이 지난 분홍 쏘세지를 수제 소시지처럼 맛나게 먹을 줄 알고
새벽 옆 집에서 들리는 황병기 선생의 미궁 박자는 흥겨운 아부라카타부라쯤으로 여길 수 있으며
추운 날 찰싹 달라 붙어 팔짱을 끼고 걷다가 귤 한 봉지를 사서 서로의 입에 넣어 줄 수 있는
넥타이를 매고 줄인 9부 바지를 휘날리며 씩씩거리며 걷는 독거인을 좋아할 수 있는
예쁘고 아량 넓으신 독신 여성분이 옆집으로 이사오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책과 영화와 사랑과 편지를 좋아하는 분이면 더욱 좋겠지요.
아. 물론 조중동과는 안 친해야 하며 300 가필드가 무언 뜻인지는 알아야 할 테이지요. 으흐흐~
전 사랑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지금은 따로 지내지만 언젠가는 함께 지낼지도 모르죠. 아무도 모릅니다.^^ '미궁'의 단점은 제가 그 음율에 취해 간다는 것이지요. 우울해지고 괴기스러워지며 하늘을 날고 싶은 충동도 가끔 느낍니다. 조중동을 신문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곤란하겠죠. 조중동은 그저 비싼 생활정보지일뿐입니다. 공짜로 뿌리는 생활정보지 말이죠. ^^
솔직히 많이 부럽네요. 결혼생활이 행복한 건...
정말 부러움을 많이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지하철에서 보신 그 분 아마도 그 하루 아니 어쩌면 평생 행복해 하며 사시지 않을까 싶네요.
힘겹게 살면서도 서로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그 분이 정말 부럽습니다.
그리고 제 가슴이 많이 미어지네요. ^^
그렇죠. 사랑을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부럽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작은 정성들이 마음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드는것 같습니다. 힘들때 일수록 서로의 마음을 다독거릴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담이시군요.
정작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건 아주아주 작은 사소한 것들이죠.
그나저나,
독거인이시라... 가끔은 외로움을 많이 타시겠어요.
맞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것은 이렇게 사소하면서도 마음이 전해지는게 아닐까 싶네요. 힘든 경쟁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진정 우리가 원하는것은 이런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거인이 된지 오래되었지만 뭐 살만 합니다.^^
기분 좋아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매일 아침 전철로 같이 출근하는 아내에게 편지 한장 적어 주어야겠습니다.^^
아내가 참 좋아하실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큰 행복이겠죠. 노곤하고 힘든 출근시간에 가장 큰 힘이 될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문명의 발달에 익숙해 지다 보니 이성은 발달하고 감성은 점점 작아지는 것만 같습니다
감성.. 어느날 문득 익수해져 있는 생활 속에서 척박함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메일 , 메신져 , 문자메세지 등등..
이제는
TV보다는 라디오가 듣고 싶고,
이메일보다는 손편지가
메신져 보다는 대화가 ..
문자메세지 보다는 전화가 더 그리운 나이가 된건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글잘 읽고 갑니다 ^^
그렇죠. 꽁마담님 말씀처럼 척박한 생활속에서 소중한 감성을 잊고 살진 않나 싶습니다. 쉽고 편리한 세상만 추구다하다 보니 그 속에서 차츰 잃어 가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문자메세지 보다는 전화가 편한 나이가 되어가네요. 늙어가는건가요? ^^
^^ 후훗 이걸 보니 답글이 달고 싶어지네요..
생의 깊이가 점점 깊어진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그렇죠. 삶의 깊이에는 이런 잔잔한 감동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편지 써보는것도 좋을것 같네요.^^
뜬금없는 질문 하나 드립니다. <12시 5분전>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원래는 0시5분전입니다. 정확히 23시55분인셈이죠. 단순하게는 하루를 마감하기 전의 느낌을 기억하기 위한것이구요, 다른 의미로는 살면서 5분정도의 여유를 갖자는 의미입니다. ^^
아, 그런 의미였군요.
전 [지구 종말의 시계]를 말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시계 바늘이 12시를 가리키면 지구가 종말한다는, 시계요. 지금 현재 그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지점이 12시 5분전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전혀 다른 의미였군요? 머쓱..합니다. ㅋㅋ